2024년의 우리들
1년 동안 10년이 늙은 것 같은 해를 보냈다

1년 동안 10년이 늙은 것 같은 해를 보냈다

농담이 아니라 1년 동안 10년 정도 늙은 것 같다. 개인적으로 마음 고생을 하는 일이 많았고, 5월 말부터 4개월 가까이 장염, 식도염 등 잔병치레를 많이 했다. 더불어 근본을 뒤흔드는 큰 결정들을 연속적으로 내렸다. 올해 초와 최근의 사진을 나란히 비교하면 마치 오징어게임 1과 2의 주인공 모습처럼 많이 변했다는 것이 눈에 보인다. 그러나 어떻게든 살아남았고, 그와중에 남은 것들이 있어 기록으로 남겨본다.
올해 갖게 된 취미생활은 ‘글을 쓰는 것’이다. 블로그 및 뉴스레터를 합쳐 약 40편의 글을 썼다. 평소에도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지만, 자기만족에 가까웠기 때문에 양과 질 모두 한동안 정체되었다.
그러나 AC2 레벨2의 ‘내가 잘하고 싶은 일’로서 글을 쓰는 일을 선택하면서 큰 변화가 있었다. Heptabase를 구매해 글감이 떠오를 때마다 카드로 넣었다. 그리고 주말에 1시간씩 시간을 내어 글감을 엮어 글로 발행했다. 발행한 글을 팀원, 친구의 고민상담에 활용하기도 했다.
점점 양이 느니까 질을 높여보고 싶었다. 이를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피드백이 필요했다. 뉴스레터를 생각만 하던 와중에 친구인 주웅이와 마음이 맞아 Life Interest를 시작했다. 3개월이 조금 안되었지만 구독자로 100명 가까이 모았다. 심지어 ‘Tidy First?’의 저자인 Kent Beck도 좋아요를 눌렀다. 이만한 쾌감이 또 있을까?

그렇게 6개월 정도 해보니 블로그 글이든, LLM 프롬프트든, 계약서든, 글로 된 무언가를 빠르게, 또 좋은 퀄리티로, 스스로 즐거워하며 써낼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도 스스로도 재밌게 읽을 수 있는 글을 많이 쓰고 싶다.
올해의 가장 큰 선택은 역시 ‘퇴사’와 ‘창업’일 것이다. 거의 8년을 다닌 AB180을 떠나는 것은 절대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심지어 창업은 생각도 없었고 바라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두 가지 이유로 창업을 선택했다.
하나는, 내가 피하던 일을 선택했을 때 좋은 일이 많았다. 자신이 없어 피해만 왔던 개발자를 골랐고, 맡고 싶지 않던 팀장을 맡았다. 그때마다 새로운 만남과 기회들이 겹쳐 내가 가만히 있어도 계속 위로 올라가게 되는 경험들이 있었다. 다른 하나는, 나의 고점을 뚫으려면 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한 사람에게 요구되는 퍼포먼스가 올라가고, 심지어 자리가 사라지기도 한다. UI 엔지니어링을 좋아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업계에 오래 있을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다소 즉흥적으로 뛰어든 창업전선은, 마치 어릴 때 깜깜한 방의 문앞에 서있는 느낌을 준다. 지금까지와 다르게 미래가 전혀 보이지 않기에 오는 두려움이 있다. 그러나 업무의 많고 복잡함에 지치지는 않는다. AB180의 경험으로 스스로 단련되었음을 것을 느낀다.
2025년, 창업가로서 나의 목표는 돈을 받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중 하나인 동쪽의 에덴에서 주인공이 한 말이다. “돈을 받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이다. 지금 세상을 지켜보니 사람들은 돈을 쓰는 방법만 알고 돈을 받는 법은 잘 모른다. 그것은 정말 잘못된 것 같다. 자신이 일한 것에 대해 어째서 정당하게 돈을 못 받는가? 나는 일을 하며 돈을 제대로 받는 법을 배울 생각이다.”

자본주의는 돈을 벌어서 쓰는 사회이다. 그러나 돈을 쓰는 법은 알려줘도 돈을 받는 법은 알려주지 않는다. ‘돈을 받는 일’을 선택한다는 것은, 내가 일을 한 가치만큼 돈을 받겠다는 일종의 도전이다.
또한, 돈을 받는 것만큼 우리에게 진심이 되어줄 사람들을 쉽게 모으는 방법이 없다. 대놓고 지불의사를 물어보면 상대방이 불편해할까봐, 거절할까봐 두려워서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한다. 그러나 어려운 말일수록 쉽게 꺼내는 연습을 해야하고, 돈을 낸 사람의 의견만큼 강력한 피드백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2025년에는 돈을 많이 받아보려고 한다.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AC2에서 도움을 크게 받았다. 올해는 레벨2, 그리고 CANOO(Christopher Alexander & Nature of Order) 패치로 또 하나의 동력을 얻었다.
레벨2는 퍼포먼스 공식을 토대로 병목을 없애고 저점을 올려 전체적인 퍼포먼스를 올리는 방법들을 다룬다. 공식의 여러 요소 중 내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탐색, 끌어올릴 방법을 설계, 실험, 평가의 과정을 2달간 스스로 반복했다. CANOO에서는 ‘보편적으로 살아있다고 느끼는 것’을 다루며, 무엇에서 시작해서 어떤 시퀀스로 이뤄져야할지 계속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만화책 같이 표현을 하려면 어떤 컷을 골라 어떤 순서로 배치해봐야할까? 이런 생각이 계속 남았다.
두 개의 과정을 거치면서, 창업을 비롯한 새로운 선택이 그렇게 무섭게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뭘 모르는지/약한지 떠올리고, 무엇부터 시작해서 검증해볼지 정하고, 그걸 잘 이어나갈 방법들을 고민하면 되니까.
올해 AB180 퇴사 전에, 1년 10개월을 써서 젠데스크를 비롯한 레거시를 걷어내는 작업에 마침표를 찍었다. 캘린더에 ‘젠데스크 해방일’이라고 일정도 생성해두었을 정도로 의미가 있었다. 또한 여러 조직이 같이 협력할 수밖에 없는 체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CS Hub를 만들고, HR 시스템 자동화하고, 사내에서 기습 세션 열고, 사내문화 설문조사를 하고…
프론트엔드 개발자의 일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더 좋은 제품, 좋은 팀이 되는데 필요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스타트업에서 직역의 구분은 해가 될 때가 있다.
허먼밀러 에어론을 구매했다. 일을 하면서 허리가 불편하거나 찌뿌둥해서 몸을 계속 흔들거나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굳이 이정도 가격을 지불하지 않고도 좋은 도구를 찾고 활용하는 방법을 알게 되면서, 비싼 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맥북을 새로 구매했다. 기존에 쓰던 M1 Pro에서 M4 Pro로 오니까 속도가 확실히 체감된다. 이번 노트북부터는 덮기 전에 A4 용지를 사이에 끼우고 있다. 이렇게 하면 키보드와 디스플레이 보호가 되어서 좋은 것 같다.
조셉 360도 회전 듀얼쿨링팬 노트북 거치대 쿨러를 구매했다. 집에는 모니터가 없어서 노트북 화면을 보며 작업을 한다. 이번에 위아래로 리프트가 되는 쿨러로 바꾸었는데, 눈높이에 맞게 조정할 수 있게 되면서 목의 불편함이 확실히 줄었다.
Tidy First? (켄트 백), Slack: 변화와 재창조를 이끄는 힘 (톰 디마르코),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가벼운 고백 (김영민)
이제 20대의 중반을 넘어 후반기로 접어든다. 고개를 넘어가는 12월이 되면서 다시금 혼란하고 어지러운, 한편으로 마음이 아픈 나날이 계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하게 나아가야한다. 나아가는 것이 무겁게 느껴지지만 그럼에도 걸어가야함을 느낄 때, 비로서 내가 어른이 되었다는 걸 느낀다.
♫ ASIAN KUNG-FU GENERATION - Mustang